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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를 섬기던 사대주의를 버리고 과감히 실리 외교를 추진한 군주, 광해군을 만나다” 1592년(선조 25년), 일본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세자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의 명을 받아 전쟁터를 누비며 의병을 모으고 민심을 수습하며 활약했습니다. 또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면서 다시는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 받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렵게 전쟁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전쟁으로 무너진 나라의 기틀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중국 대륙에서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상황에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 외교를 펼쳤습니다. 명과 후금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일 때도 지혜로운 외교를 펼쳐 조선의 피해를 최소화하였지요. 하지만 당시 조선 사회는 명나라를 섬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광해군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선과 조선 백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 사회와 조선의 국제 관계 광해군이 즉위하기 전인 선조 때부터 조선의 조정은 붕당 정치의 폐단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사림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고 다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었으며, 또 북인들은 대북과 소북으로 나뉘어 서로의 이익과 명분을 가지고 대립했어요.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각 당파에 골고루 관직을 내리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도 뿌리 깊은 당파 간의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당파들 간의 갈등과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던 조선 관료들에 의해 광해군을 왕위에서 쫓아 낸 ‘인조반정’이 일어납니다. 그 이후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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